문학공간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10>

김인자
2002.11.03 11:00 6,352 0

본문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10>
-발로 세상을 그리는 사람-


10여 년 전이었지요.
모 신문사 문화부기자를 앞세워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그가 살았던 집은 골목을 끼고 한참 들어가서 맨 꼭대기 끝 좁은 대문을 열면 손바닥만한 마당가에 햇살이 와글거리고 노는 소박한 홈이었지요. 부모님이 계셨고 형과 어린 조카들과 그리고 마당에는 강아지가 놀았던.......

자처해 찾아가긴 했지만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생각보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것에 놀랐고 다른 하나는 힘든 장애를 가지고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현재 그는 32살. 1급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두 손은 전혀 쓸 수 없고 모든 동작은 두 발로 함. 언어 소통이 원활치 못함. 상체가 늘 흔들리고 있어서 입으로도 작업은 불가능 오직 쓸 수 있는 건 두 다리뿐.
자세가 불안정하지만 그러나 걷는 건 별 불편이 없음.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발가락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렸고 10여 년 전 그때 이미 컴퓨터에 일가견을 가질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졌음. 모든 학습은 독학으로 이루어졌고 가끔 자처해 그의 그림을 돌봐준 분이 있었지만 지속적이지는 못했음. 발가락으로 펜을 잡거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하는 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자유롭지만 옷을 갈아입거나 씻거나 혹은 용변을 해결하는 일은 도움이 필요함. 그의 초기 그림은 리얼한 정신 세계를 형상화한 반추상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상업주의에 가까운 유화에 몰두함. 그러나 결국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실체, 모든 이들을 꿈꾸는 세상임을 나는 알고 있음.

웃음이 넘치는 32살 천사에게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제야 고백하지만 '저렇게 사는 사람도 다 있구나' 그것이었습니다. 상체를 가눌 수조차 없을 만큼 연실 뒤틀리는 몸에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당신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말을 알아들 수 없다는 것은 잠시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생긴 벽이었을 뿐 그후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도 당신 특유의 환한 웃음이 모두를 대신해 주었으니까요. 흔들리는 상체를 호흡으로 고정시키고 그림에 몰두할 때는 곁에 있는 사람 누구도 숨을 죽이며 빨려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무서운 집착은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배운 것일까요.
외출시엔 늘 그림자처럼 아버지께서 기꺼이 당신의 손발이 되어주시지만 집에 있을 땐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그 모든 걸 대신해 주잖아요. 당신의 어린 조카들은 또 어떤가요.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당신이 항상 누구를 도와주지 못해 애쓰는 모습은 언제나 도를 지나치지요.
육체에 장애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건강한 영혼을 가졌다 하던가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당신이 베풀어 온 사랑일텐데 늘 자신을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지요.
당신이 아침마다 내게 한 편의 시를 이 메일로 보내올 때도 그것은 단순히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그림과 십자가 목걸이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구요. 그 선물을 받을 땐 어디 쥐구멍이라고 찾아들고 싶은 수치심을 당신은 상상이나 했을까요?
착하고 말 잘 듣는 막내 동생 같아 싫은 소리도 많이 해왔고 그림과 글에 대한 아쉬움은 또 얼마나 쉴 새 없이 야단 아닌 야단으로 일관해 왔던가요? 어떤 충고에도 저항 한 번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웃음으로 답하던 당신. 나는 그것이 우리 서로가 신앙처럼 믿고 있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들 모두 나를 환대해주는 따스함도 언제나 돌아올 때는 눈물겨웠습니다. 이제는 멀리 있다는 이유로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신을 생각하면 따뜻한 당신의 가족들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희망대로 당신이 좋은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 그간 너무나 힘겨웠을 부모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렸으면 하는 것이 곧 나의 소망이기도 하지
만 지금처럼 열심히 좋은 글과 그림에 몰두하다보면 언젠가는 당신이 바라는 눈부신 세상도 오겠지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을 보고 감탄해 왔습니까? 누구의 말처럼 그림은 손이나 발로만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내는 희망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을 당신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물들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의 활짝 핀 웃음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묘약 중 묘약이 아닐까요. 우리의 우정이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알고 보면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으니 모두가 당신이 나누어 준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당신으로부터 한 편의 가을 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소박한 눈부심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그러나 여전히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 것도 드릴 게 없군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