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2009년 10월 14일 오순이님 '조선일보'기사 게재

최고관리자
2010.03.16 10:35 5,0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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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화가 오순이씨, 오늘 3번째 개인전 열어

"오직 실력으로 평가받아 이 자리에 섰다"
  • 윤주헌 '발행일 : 2009.10.14 / 사람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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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천안캠퍼스에 있는 오순이(43) 교수의 작업실(49㎡·15평)에 들어서자 종이 냄새, 먹 냄새가
물씬 났다. 가로 3m, 세로 2m 안팎의 화판(畵板)에 붓과 물감, 그리다 만 산수화가 흐트러져 있었다. 한쪽 벽을 다 차지한 책장엔 미술 서적이 가득했다.

오 교수는 이 방에서 하루 7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수업이 없는 방학 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내내 화판 앞에 붙어 있는다. 작업이 잘 돼서 새벽까지 그리는 날도 있다.

오 교수의 방이 동료 교수들 작업실과 다른 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화가들
작업실 바닥은 대개 물감 얼룩이 어지럽지만, 오 교수 작업실 바닥은 말끔하다. 오 교수가 두 팔
대신 발가락으로 붓을 쥐고 바닥에 놓인 화판에 그림을 그리는 까닭이다.

오 교수가 1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신작 30점을 건다. 2007년,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5년 전 우리나라 구족화가(口足畵家·사고나 장애로 두 팔을 못 쓰게
돼 입과 발로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 중 처음으로 단국대 초빙교수가 됐고, 2년 전 전임교수가 됐다.

오 교수는 느긋하게 웃으며 "학업을 마치자마자 교수가 돼서 그런지 첫 수업 땐 너무 긴장해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다"며 "요즘은 구내식당에서 학생들에게 밥도 자주 사고, 동아리 지도도 다"고 했다.

오 교수는 세 살 때 집 앞 철길에서 놀다가 열차에 치여 팔을 잃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교사의 권유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국대 동양화과를 수석 졸업하고 중국 항저우(杭州)에 있는
중국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끝내자마자 모교 초빙교수가 됐다.

오 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교과서에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교수가 될 때
미디어의 주목도 받았다. 그는 "내게 있는 장애로 인해 차별도, 주목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직 실력으로 공정하게 평가받았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장애가 있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에요. 그 얘길 또 기사로 쓸 이유가 있어요? 차라리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행복'을 느끼며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고 쓰는 게 낫지 않아요?"

오 교수는 "화가로서 인정받고,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해가는 게 "나의 목표"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산수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수묵산수화로 나타냈다"고 했다.

"제 인생은 항상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그렇지만 저 자신에게나 학생들에게나 '무서운 사람'은
아니에요. 저 학점 잘 주는 교수예요. 아무도 안 믿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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