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17살 내 아이가 나에게 준 웃음

김인자
2002.11.03 10:49 5,1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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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내 아이가 나에게 준 웃음.
연일 계속되는 찜통 더위 때문인지 입맛 없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여름별미로 모처럼 나는 해물 김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면 배고픈 아이들은 집안을 돌아다니는 음식 냄새에 민감해지기 마련인데 그 냄새 때문인지 막내가 내 곁에 와 죽 끓이는 일을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른 멸치와 새우를 넣고 푹 고아 우려낸 국물에 찬밥을 넣고 구운 김을 가위로 잘라 넉넉히 넣은 뒤 밥알이 충분히 퍼질 때까지 한참을 끓여 소금으로 간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이지요.
우리 집 막내는 구수한 냄새에 코를 흠흠거리며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김의 정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끓고 있는 김이 꼭 미역 같이 생겼네요? 엄마."
"그렇지?" 마른 김에 익숙한 아이가 할 수 당연한 소리라 여겨 하던 일을 계속했지요. 하기야 이 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물었지요. "너, 우리가 매일 먹는 김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
"응 알지.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잖아요.(그건 내 글을 보고 어깨 너머로 배운 상식)" 속으로 당연한 질문을 했군 하며 잠시 후회가 스쳐갔지요. 나는 후회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되물었습니다.
"그럼 김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겠네?" 문제는 그 다음 아이의 대답이지요.
"참 엄만 그것도 모를까봐서요? 태어날 때부터 김은 네모잖아요"
어디, 아이의 대답이 어미인 내가 웃을 일인가?
그러나 나는 끓고 있는 죽 냄비를 안고 배가 아프도록 웃고 또 웃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엄마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웃게 했는지도 모르는 듯, 단지 저가 엄마를 웃게 했다는 것만 재미있어 했지요.
유치원생도 아니고 오래 전에 내 키를 훌쩍 넘겨버린 17살이나 된 딸아이에게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김은 태어날 때부터 네모라니요?  
태어날 때부터 네모라는 이 기발한(?) 대답.

그날 일은 며칠 동안 혼자 있을 때에도 웃음과 생각을 동시에 주었습니다. 현장이 아닌 교실 안에서 교과서만을 고집해온 이 대책 없는 교육의 결과를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하나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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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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