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詩> 어둠 속으로 떠난 언니

김인자
2002.11.03 10:51 5,43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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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으로 떠난 언니<詩>



새벽 인기척에 눈을 떴다. 언니가 떠난다는 날이었다.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애써 외면하느라 이불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내내 잠든 척하시던 아버지 등뒤에다 언니는 큰절을 올렸다. 얼마 후 가방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내 저금통을 틀어 마련한 국방색 투피스를 차려입은 언니가 읍내 정거장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나는 그저 막막해서 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발만 동동 굴렀다. 가난한 몸에서도 온기는 남아있어 입을 열 때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났다. 언니는 고향을 떠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며 뜻 모를 말만 되풀이했다. 헤어지면 그것으로 끝일지 모르는데 고단한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던 언니가 아버지와 어린 나를 두고 서울로 남자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언니가 우리를 두고 떠날 수 있는 모진 힘이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거장에서 시린 손을 호호 불고 있을 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저쯤에서 첫차가 왔다. 나는 언니 손을 더 세게 잡아끌며 울부짖었다. 차장이 신경질을 부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재수 없게 첫차에서 운다고. 서러움을 참지 못한 나는 더욱 크게 울었고 언니도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눈물을 닦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이 언니와 나를 번갈아 살피며 차에 올랐다. 언니를 실은 완행버스는 어둠 속 뿌연 먼지를 날리며 눈물로 범벅이 된 시야를 더욱 흐리게 하고 떠났다. 어둠이 언니를 데리고 떠난 정거장에서 나는 돌처럼 오래 서 있었다.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이 더디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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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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