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두 편의 시를 위한 변명

김인자
2002.11.03 10:54 5,375 0

본문


-두 편의 詩-

오늘 나는 47년 내 인생을 판관判官 앞에 세웠다.

두 달 전쯤 나는 시내 같은 곳에서 차선 위반으로 스티커를 발부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가운전 10년이 넘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속경관이 처음 차를 세웠을 때 나는 그냥 웃었다. 뭐라고 한 마디 해야할 것 같아서 잠시 궁리 끝에 "뭘 잘못했는데요?" 그냥 그렇게 물었다. 직진차선에서 좌회전을 한 게 문제였다. 나는 순순히 면허증을 제시하고 넉넉한 웃음까지 흘리며 "죄송합니다"로 순순히 손을 들었다. 단속경관도 너무 쉽게 수긍하는 내 태도에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도 웃음을 보였다. 물론 좀 봐달라는 그 흔한 사정 한마디 없었는데 그는 제일 싼 것으로 끊어주겠다고 선심을 섰다.
무엇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을까? 그날은 마침 어버이날이라 내 아이에게서 편지 한 통 받은 것 외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나는 3만원 짜리 스티커를 받고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불렀다. 드디어 내게도 올 것이 기어이 오고 말았다는 안도감이었을까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이런 시를 섰다.

<詩>
부자富者

전경戰警이 차를 세우며 인사를 올려부쳤다
오라, 어버이날이라고 이렇게 차를 세우면서 까지 인사를?
순간에 깨지는 게 꿈이라 했던가
도로교통법 몇 조에 의한 위반을 했다나
직진차선에서 좌회전을 한 건 오늘 일만은 아니었으나
누구 말처럼 재수가 없어 걸려든 것일 뿐
인심도 후하셔라, 죄송타 했더니
그는 4만원의 벌금을 3만원으로 깍아 딱지를 떼었다
아, 나는 오늘 눈깜짝할 사이 말 한마디로 1만원을 벌었다
나는 1 만원을 벌었다는 것만으로 룰루랄라 기분이 좋았다.
3만원 벌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위반했던 경력을 누진 적용하면
내 산수 실력으로는 샘이 곤란한 금액에 이르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집에 와 남편에게 고했더니 얼씨구, 잘했다, 잘했다, 한다
언제부턴가 그런 계산법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시시한 재벌 부러울 까닭도 없다
오늘, 다만 말 한 마디로 벌어들인 1 만원 어디 그뿐인가.
그 이야기를 밑천으로 이렇게 시도 쓰게 됐으니
언제 누군가 청탁이라도 해온다면 (당연히 그럴리도 없지만)
그래서 원고료라고 몇 만 원 내 주머니에 찔러 준다면
도대체, 그런다면 나는 또 얼마를 버는 것일까
남은 생은 이 계산법으로 벼락부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으로 콧노래가 나오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에게나 권할 수 없는 방법이기는 하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같은 자리에서 신호위반으로 다시 단속반에 걸리고 말았다. 분명 녹색신호를 확인하고 정지선을 출발했는데 단속경관은 황색신호일 때 좌회전으로 건넜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승복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위반한 사실이 없으며 무엇을 근거로 단속하는지를 따지고 물었다. 지난 번 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 앞에 나는 조금도 굽히지 않았고 시종일관 전경의 단속에 승복할 수 없노라는 말만 주장했다.
나는 나를 안다. 때로 힘도 빽도 없는 내가 너무나 당당해 주위 사람들을 의아하게 하는 내 쓸데없는 오기에 대해서.
그때까지 나는 면허증을 제시하지 않았고 잠시 동안 그와 나의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내가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는 시늉을 하자 전경은 차 앞을 가로막고 서서 제지를 했다. 그리고 안되겠다 싶었는지 무선으로 113순찰차를 불렀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냉철해지고 나도 몰랐던 힘이 생기는 듯한 위로까지 느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내 몸이 먼저 방어자세를 취하는 것이리라.
잠시 후 파출소 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경관이 차에서 내려 정중히 말을 건넸다. 일단 면허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만약 승복할 수 없다면 절차에 의해 이의신청을 하면 된다고.
나는 그분의 정중함에 한 풀 꺾여 면허증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도 아마 강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고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적 본능이 발동했으리라.
제 뜻을 이루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던지 전경은 어깨에 더욱 힘을 주고 스티커의 공란을 채우기 시작했다. 벌금6만원과 벌점.....
이의 신청은 그래서 시작됐다.
나는 인근 파출소에 가서 절차를 알아보고 다시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 이의신청에 관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약 1주일 후 재판날짜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 더위에 도둑 맞은 듯한 시간과 번거로움. 정신적 피로감까지 계산하면 회의가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주사위를 던져놓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주위 사람들의 조언은 내가 이길 확률에 대해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헛수고만 한다는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고.
그럴수록 더욱 해보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 해보자. 내가 언제 또 무슨 일로 내 인생을 판관 앞에 세우겠는가?
드디어 재판 날이 다가왔다. 비로소 47년의 내 삶을 판관 앞에 서게 한 것이다. 그날 하늘은 몹시 푸르렀고 내 기분은 특별히 좋았거나 나쁘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또 한 편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詩>
이의異意 신청

딱지를 발부 받고 이의신청을 한 건 나였다.
솔직히, 47년 허술히 마모된 내 인생
한 번쯤 판관判官 앞에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자.
삶이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이건 아니라고
늦은 감은 있지만 이의異意있다고 손들고 나선 건 잘한 일이다.
애초 내가 겁냈던 건 탁한 정신이었지
불운한 삼류는 아니었으니까.

이의신청자를 법원으로 호송하던 경관은
아침부터 늘어지게 하품을 했고 가끔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불렀다.
나는 지금 어디로 호송되고 있는가?
잠시 후 판관은 내게 일러줄 것이다.
내 생의 모든 죄와 벌과 앞으로의 좌표까지도

판사判事가 입장하자 사람들은 모두 기립했다.
여기까지는 영화에서 본 그래로다.
내 인생도 영화에서 본 그 대로라면?
나는 잠시 꿈을 꾸었다.

이름이 호명되자 정신을 차리고
나는 나를 판사 앞에 세웠다.
무엇을 근거로 무죄를 인정받으려 했던가?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항복하자고 말하고 싶은
내 속에서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 이건 뭔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 나는 재판을 끝냈다.
그렇게 바라던 재판이었지만, 나는 안다.
판사가 아무리 무죄를 선고한다해도 나는 유죄다.
47년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유죄의 알리바이는 충분하다..
나는 또 하나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겼다.
호송차 안에서 잠시 본 푸른 하늘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참고로 그날 나는 그 재판에서 6만원의 벌금을 3만원으로 감원받았다.
누군가 내 인생을 에누리한 듯한 기분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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