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안나푸르나의 작은 신神

김인자
2002.10.15 08:07 5,3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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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12(화) 23:54
안나푸르나의 작은 신神   -포터 디네스에게-      

네팔,
베시샤르 툭체피크 롯지 앞에서 우리 일행이 탄 로컬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전날 밤 너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또 한 팀의 손님을 받게 되었으니 무거운 짐에 눌려 작은 키가 더 작
아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다가 깬 것을 아닐까?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가이드 라주가 이번 트레킹에 짐을 질 포터라고 너를 소개시켜
주었을 때 나는 무슨 소린가 했다. 몇 십 킬로그램의 짐을 맡기기엔 터무니없이 키도 몸집
도 작았고 20살이라는 나이 또한 그랬다. 너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나마스떼로 다가왔
지만 나의 의심을 웃음으로 위로하기엔 미흡했다.
대장의 큰 배낭을 지고 우리가 묵을 롯지(여행자 숙소) 3층으로 좁은 계단을 앞서 올라갈
때도 나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걸음은 빨랐으나 네 작은 몸집이 가
방에 묻혀 보이질 않으니 가방을 메고 가는 게 유령인지 사람인지조차 몰랐다면,
가방 하나만으로도 첫인상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정작 트레킹이 시작되면 네가 한꺼번
에 질 가방이 세 개로 늘어날 것이라는 말은 깊은 생각 이전에 이미 결론은 불가판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베시샤르를 떠나며 함께 찍은 사진 속 너는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충만감으
로 웃음이 넘쳤다. 한 달 가까이 우리를 따라 등에 지고 걸어야 할 짐은 실로 장난이 아니
었는데 이제 막 시작을 눈앞에 둔 지점에 서서 암담했을 법도 한데 오히려 환하게 웃는 웃
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못내 궁금했었다.

트레킹 동안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유일한 말은 "노 플라블럼!"이다.
나는 힘든 트레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에야 비로소 노 플라블럼이라는 말이 세상
모든 것을 이끌고 통제하고 감사하며 지배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그 뜻이
주는 열린 사고는 종교조차도 초월한 깊이었음을 믿게 했다고나 할까.
이건 진심이다. 나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마음을 다해 보살펴 준 디
네스, 네가 곁에 있어서 가능했던 도전이고 성취였다. 그리고 함께 있을 시간이 줄어들면서
잘 하고 있다는 위로보다는 너와 헤어질 시간이 가깝다는 것으로 불안했고 괴로웠다.
너는 위험 앞에선 앞서 걸었지만 평소엔 내 뒤(너는 참 내 뒤를 오래 지켜 준 사람이다)에
서기를 좋아했으며 태산 같은 짐을 지고도 걷지 않고 날아다녔으며 웃지 않았던 적도 해피
하지 않았던 적도 노래를 멈춘 적도 없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히말라야의 축복을 나눠주려
했다.

먼저 도착해 짐을 내려놓으면 한 번쯤 허리를 펴고 쉴 만도 한데 저 아래까지 가방을 받으
러 단숨에 뛰어내려오는 너를 볼 때마다 히말라야가 나를 위해 내린 천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너는 술을 좋아했지만 우리들보다 결코 늦게 일어나는 일도 없었고, 항상 노 플라블럼이라
고 노래했지만 왜 힘들지 않았겠니? 5416m. 세계에서 가장 높은 트롱라 고개를 넘을 때조
차도 짐이 무겁다는 불평 한 번 없었다.
굿모닝으로 아침을 깨우는 이도 너였고 화장실 문을 지켜주는 이도 너였고 고양이 세수라
도 할 수 있게 따뜻한 물을 얻어다 주는 이도 너였다. 길을 막고 서있는 당나귀나 야크를
보내는 일도, 미끄러운 절벽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이도, 크고 작은 심부름을 즐겁게 자처
하는 이도 오직 너였다.
여행 중 드물게 있는 일이지만 언어가 자유롭지 못한 것에 감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너와
함께 있을 동안 말로 드러내지 않고 그토록 아름다운 교감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건 이번
트레킹에서 얻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네겐 가난과 남루와 문맹이 있는 대신 노NO라는 말과 의심이 없었고 시기심이나 불평이
없었고 머리 굴리는 일이나 그 어떤 포장이 없었다.

핫 스프링을 끝내고 다른 일행들은 먼저 가고 나와 단 둘이 뒤에서 천천히 숲을 걸어 올라
갈 때 생각나니?
갑자기 내가 네 손을 잡았잖아. 힘드니 끌어달라고.
순간 당황하면서 애써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네 모습은 잊을 수 없
다. 네 가슴이 몹시 뛰고 있다는 것을 손의 체온만으로 충분히 감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
를 자식 같다고 생각해 그랬는데 단 둘 만이라 그랬는지 너는 평소 보살피던 누나나 엄마
같은 느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날 오후 내내 얼굴이 붉어진 넌 나의 시선을 피해 저만
큼 앞서서 하늘만 보며 걷더구나.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네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혼자
웃음이 터진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천사의 손을 훔친 죄로 가슴 깊이 주홍글
씨를 흉터로 얻은 건 아닐까?

데네스!
정말 고마웠다.
마음을 다해 보살펴 준 그때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지금 나는 따뜻한 방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만약 내 마음이 오래 히말라야를 못 잊게 된다면 그것은 거대한 설산 때문만은
아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진 포카라에서 이틀 동안 차를 타고
다시 이틀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다는 다울라기리 산 아래 마을 고향집에서 지금쯤 가족들
과 한가한 때를 보내고 있을 디네스 바로 너다. 나는 네팔에서 작고 볼품없는 포터 디네스
를 만난 게 아니라 명랑하고 밝고 힘센 히말라야 천사를 만났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어떤 연이든 나는 다시 너를 만나고 싶다. 우리를 대신해 짐 진 하루의 수고를 몇 푼의 돈
으로 계산하지 않고 더 깊은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그때를 기다려 봐야겠다. 내 손안에서
파르르 떨리던 체온과 배낭을 지고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러
주던 행복했던 때를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네가 있어서 진정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신들이 산다는 히말라야를 추억하는 시간 또한 오래오래 너와 함께 지속되었으면 싶
다.

2002.2.. 서울에서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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