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6>

김인자
2002.11.03 10:55 5,097 0

본문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6>
-어둠 속 주유소가 있는 노천카페-

어느 시인으로부터 오늘이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일년에 단 한 차례 만난다는 칠석날이
라는 메모를 받았습니다.
입추도 처서도 지났으니 이제 오는 가을은 누구의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는 없을 듯 싶은
며칠 전 불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고 만남은 약속은 오늘 이루어졌습니다. 산도보고 들도
보고 늦은 저녁, 밤하늘의 별도보고 어디 그뿐입니까? 맘껏 쏟아놓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펼쳐 보일 설레임에 우리의 약속장소는 한적한 전원이 되었습니다.
숲을 보며 푸짐한 저녁을 먹었고 자리를 옮겨 한 눈에 호수가 보이는 전원카페에서 온갖 수
다를 동원해 차를 마시고 밖을 나온 시간이 11시쯤 되었을까요? 꽤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누
구 하나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딱히 어디로 다시 들어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었기에 나의 섣부른
제안 하나로 우리들은 차를 돌렸습니다. 시내를 진입하는 작은 언덕 위에 주유소가 달린 넓
은 휴게소의 노천카페를 생각했던 것이지요.
길들은 한적했고 상가의 불빛들도 하나 둘 꺼져 가는 시간, 우리 일행이 휴게소 입구에 들
어섰을 땐 휴게소조차도 이미 불이 꺼지고 마지막으로 문 닫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주유
소만이 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우리는 가벼운 한기가 살갗을 파고드는 휴게소의 넓은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어둠 속 저만큼 주유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겨우 준비한 자판기의 차를 앞에 놓
고 끊어졌던 생각을 다시 잇고 있던 잠시 후에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주유소 불빛 마저 꺼지
고 막막한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을 때 어디선가 어두운 객석에 조명이
스며들듯, 한 줄기 산들바람 같은 광명이 찾아왔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우리들을 위해 늦은 밤 노천카페의 불을 다시 켜주
고 음악까지 새롭게 그 길가의 소음을 뚫고 흘러나오게 했던 사람.
물론 차를 마신 적도 다른 음식을 주문한 일도 없는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던 당신의 아름답
고 너그러운 마음에게 (더욱이 조금 전 비싼 차 값을 치르고도 문닫을 시간에 떠밀려 쫓겨
나듯 밀려나와야 했던 어느 카페의 주인을 생각하면) 더욱 눈에 보이지 않은 존경심과 경외
감 마저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나의 여섯 번째 천사에게.
어디서 흘러왔는지 늦은 시간 네 여자(나와 내 친구들)가 그 휴게소 노천카페에 나타났을
때 휴게소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는데 아마도 당신은 주유소 주인이었던가, 휴게소 종업원
이었겠지요?
시간이 늦어 딱히 갈 곳이 없던 우리들이 마지막 쉼터로 택한 휴게소라는 곳은 단지 음료수
한 잔하고 늦은 저녁의 지친 삶을 잠시 쉬어가도 좋을 그런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저쯤에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쉬어간다는 말이 주는 안락함에 기대 휴게소를 찾아든, 이제 더 이상은 갈 곳이 없었던 우
리들의 난감함을 당신은 어떻게 읽었던가요?
불이 꺼지고 사람 하나 없는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과 해방감
으로 주유소를 향해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어둠 저편에 있던 당신의 다스한 마음이
더 넓은 어둠 속에 뎅그라니 앉아있는 우리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겠지요.
마지막으로 주유소 불빛 마저 꺼지고 우리들 다시 어디로 가야하나 서로의 표정 살피며 어
둠에 익숙해지고 있을 그때 당신이 우리에게 심어준 한 줄기 빛.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외
등 하나를 희망처럼 선물해 준 당신은 어떤 사람, 어떤 천사였습니까?
숨어서 빛을 준 당신을 우리 모두는 조금도 의심 없이 천사라 이름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꺼졌던 음악이 흐르고 자리를 일어서려 했던 마음을 다시 내려놓은 채 늦은 밤의 고요를
뚫고 음악과 빛과 당신이 보여준 따스한 순간들을 맘놓고 느끼지 시작했지요.
1시간쯤 흘렀을까요? 시간에 쫓겨 그 자리 일어서는 것을 아쉬워하며 귀가를 서둘러야했지
만 당신은 빛과 음악과 보이지 않은 온기만을 주었지 끝내 우리들 앞에 모습을 보여주는 일
은 없었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광명을 준 고마움을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기가 아쉬워 감사를 담은 짧은
메모 한 장이라도 탁자에 남기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지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돌아서 오는 동안 내내 따스했고 아쉬웠던 마음을 이 편지로 대신하니 작지만 받아 주십시
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당신이 우리들에게 주신 늦은 저녁의 빛과 음악은, 잔잔하고 조용했지
만 메마른 우리들 가슴에 온기를 심어준 충분히 감동적인 선물이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동안 끝까지 우리를 따라왔던 불빛과 음악을 나와 내 친구들은 오래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칠석날에 만난 우리들의 천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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