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우주의 시인께

김인자
2002.11.03 10:56 5,568 0

본문

우주에 들다.
-우주의 시인 이성선 선생님께-

그리도 넓고 큰 우주에 이제 선생님 영혼 하나 맘놓고 거처하실 처소는 마련하셨습니까?
아니 몇 억 광년 전부터 이미 마련되어있었을지도 모를 오직 선생님만의 처소는 잘 찾아 드셨
는지요?
선생님의 안부를 어디에서 어떻게 물어야하나 고민 끝에 인터넷에 몇 자 올려놓을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흔히 인터넷으로 불가능한 일
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들은 이야기가 있어 인터넷에 글을 올려놓으면
언젠가는 선생님께서 읽지 않으실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습니다.

2001.5.4. 내 친구 타락천사로부터 아침 일찍 선생님의 육신이 마음과 더불어 세상 문을 닫
으셨다는 비보를 전해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인정하기에는 불과 2주전쯤. 서울에 오셨을 때
저랑 통화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선생님께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몸이 좀 힘들다고 하셨
던가요? 얼마 전 제가 다녀온 남태평양 여행에 대해 자꾸만 물으시며 선생님도 그렇게 한가
하게 휴식할 수 있는 느긋한 여행가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던 그 절실한 목소리는 그 후에
생각하니 그냥 절실한 목소리가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비보를 전해 듣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강원도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는 슬픔을 누르며 참
아야했습니다. 그 순간 많은 문인들이 이미 속초로 달려가고 있었을테고 문밖으로 달려나와
예전처럼 반겨주지도 못하실 걸 뻔히 알고 나는 지레 실망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한 달 후쯤이었을까요? 내 마음이 백담사 계곡에 가고 싶다고 졸라 견딜 수 없었습
니다. 그래서 6월 초 무작정 차에 시동을 걸고 백담사를 찾아갔습니다.
백담사 첫 담에 뿌려졌다는 선생님은 풀이나 나무나 바위나 이끼나 물이나 모두가 선생님
의 모습을 담고 있었지만 정작 목소리가 없어서 조금은 허탈했습니다. 그때 쓸쓸하게 걸음
을 놓고 있던 내 모습을 아마도 어느 숲에선가 허허 웃으시며 보고 계셨던 건 아니었을까
요?

어느 누구는 첫 담이 백담사 위쪽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했고 또 어느 누구는 초입의 계곡이
라는 확신 없는 여러 사람들의 말에 종잡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내 추측대로 첫 담이니 가장
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거라고 혼자 믿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담사 앞 계곡 물에
나뭇잎 하나를 띄우고 맨 아래쪽으로 급히 내려와 보니 그 나뭇잎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
고 물소리만 찰찰찰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물소리, 바로 선생님이 음성이었던 것일까요?

백담사에서 돌아오니 그 달 현대시학지가 도착해있었습니다. 그 책 첫머리에는 선생님의 친구 최
명길 시인께서 쓰신 추모시가 들어있었는데 선생님의 평소 당부대로 마지막 몸을 그리도 좋아
하셨던 백담사 첫 담에 뿌리자 나무도 이끼도 물도 모두 기쁘게 받아갔다는 그 싯귀는 너무
도 나를 전율시켰습니다.
그랬겠지요. 그 무엇이 반갑게 선생님을 맞아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도 읽지 않
겠지만 분명 선생님만은 읽어주실 '우주에 들다' 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저도 썼습니다.

우주에 들다.
-고 이성선 시인을 위한 -


그분께서 우주로 돌아가셨다.

인도를 그렇게 좋아하시던 그분께서
이번엔 인도보다 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북인도에서 계속 가고 싶었지만 더는 갈 수 없었던 곳,
오늘쯤은 우리들 영혼의 산
히말라야 어느 봉우리를 오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분의 詩처럼
그가 허공을 걸어서 갔다면,
너무 멀어서 단번에 그곳까지가 무리였다면
지금쯤 어느 작은 암자에 신발을 벗고
잠시 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명길 시인의 추모시 끝에는
'그의 몸을 불살라 설악산 백담계곡 첫담에 뿌리자
이끼, 바람, 풀잎, 햇살, 나뭇잎,
물방울들이 손을 벌려 받아갔다' 고 했다.


이곳에 머물 땐
평생을 목숨처럼 아끼며 쓴 시들 우주에 바쳤듯이
마지막 남은 그분의 몸 또한
기꺼이 우주에 바쳤으므로
모두들 반가이 손을 벌려 고맙게 고맙게 받아갔으리라.

이번 여름엔 백담사 첫담으로 그분을 뵈러가야겠다.
이끼, 바람, 풀잎, 햇살, 나뭇잎, 물방울
모두들 손 내밀어 반겨주겠지.



그 후,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시집 12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에 대한 문학적 조명
은 문예지 혹은 신문 방송 여기저기에 집중적으로 다루어져서 평소 시인으로써 이루고자 하
셨던 시의 세계가 다각도로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많은 기사에 이의를 다는 독자는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이 좋고 선하다는 그것만으로
문학을 조명하려했던 건 분명 아니었습니다. 한결같이 선생님께서 그렇게도 바라고 추구하
셨던 우주의 시. 우주 시인이라는 것에 조금도 다른 주장이 이입할 수 없었던 것이었겠지요.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평생을 한 우물만 파셨던 선생님만의 시 세계는 독특했고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동광중학교에 계실 때였던가요? 선생님과 제가 오랜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때,
선생님께서 제게 보낸 편지글에는 이제는 내 인생의 진정한 도반(桃盤)이 생겼다는 위로가
드니 정말 고맙다 하셨던 말씀 기억하시는지요?
그 말씀에 저는 기쁨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단지 시를 쓰는 고향 후배라는
사이 말고 끝까지 친구로 생각해주셨던 선생님의 헤아림을 선생님이 부재중이신 지금에서야
그 깊은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저는 시의 열정만 있었지 세상 물정 아무 것도 모르는 얼마나 철없는 후
배였겠습니까?
가족과 혹은 친구와 일년에 몇 번씩은 속초에 갔었고 그때마다 선생님과의 나눈 차 한 잔
은 특별한 의미를 담았습니다. 밤이든 낮이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햇살 같은 얼굴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안 계신 지난여름, 휴가를 얻어 속초에서 며칠간 머무르는 일은 왠지
모를 허전함뿐이었습니다. 설악산을 보는 일도 동해바다를 보는 일도 그랬습니다.

나는 참 철없는 도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진정한 도반의 의미를 깨닫고 있으니 늦었
지만 그때의 철없음을 모두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그리워지면 언제라도 백담사에 들르겠습니다. 우주 어느 곳에 계시다가도 제가
백담사에 가는 날만은 한 걸음에 백담사로 달려와 주실거죠?
그곳에 인터넷이 연결되면 편지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선생님. 곧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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