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7>

김인자
2002.11.03 10:57 5,255 0

본문

지폐 한 장의 사랑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7-

그날 나는 양재 역 근처에 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대중 교통을 이용해 볼일을 보았습니다.  
일을 다 본 뒤 어떻게 집으로 가야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양재 꽃시장 앞이었던가요. 바로 내 앞에서 신호대기에 멈춰 선 좌석버스가 한 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로 그곳에서 조금만 위로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신호를 받고 서 있는 버스를 향해 태워줄 수 있느냐고 사인을 보냈을 때, 잠시 후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 앞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 올랐습니다.    
문제는 차를 타고 난 다음인데 차비를 물어보니 1400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차비를 내려고 지갑을 펼치자 잔돈이라고는 천 원 짜리 한 장뿐이었고 나머지는 만 원 권이었습니다.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면 잔돈을 미리 점검해 두었을 텐데 뜻밖의 상황에 나는 기사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천 원 권 한 장과 나머지는 만 원 권뿐이니 수원에 도착해 바꿔서 드리면 안 되겠느냐구요.
흔들리는 버스 기둥을 잡고 사정을 말했지만 내 표정을 살피며 한 차례 위아래를 훑어보던 버스 기사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난감했지요. 한 참을 그렇게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버스 뒷 자석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보고 있던 초췌한 아주머니 한 분이 좌석에서 일어나 앞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만난 천사에게
평소 지하철 이용이 대부분이었던 나는 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흔치 않아서 그때 느닷없이 내 앞에 서있는 수원 행 버스를 보자 반가움 때문이었는지 본능이 앞서서인지 무조건 타고 보자는 심산이었지요. 내 지갑에 잔돈이 없다는 생각은 뒷전이었으니까요.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어떻게 방법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 말입니다.그러나 그날 버스 기사의 묵직한 표정은 나를 충분히 난감하게 했습니다. 공짜로 차를 얻어 타겠다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왜 하필이면 뒷좌석에 앉아있던 당신이었을까요.
차안에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 자처해 도움을 주려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모두 마음은 있었겠지만 선뜻 여섯 개의 동전을 내게 빌려주려 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앞으로 걸어나온 당신의 손에는 꼬깃한 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자, 여깃어요. 이걸로 써요"
그리고 당신은 등을 보이며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뭘 어떻게 고맙다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내 손안에 쥐어진 천 원 자리 지폐 한 장을 보태 이천 원을 기사에게 건넸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거스름돈 600원을 손바닥에 던지듯 놓았습니다. 동전 여섯 개를 받아들고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된 나는 당신이 앉아있는 곳을 찾아 뒤로 갔지요.
천사여,
그럴 때 나는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을 적절히 담아 낼 수 있는 모국어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남은 잔돈을 두 손으로 내밀며 남들이 다 하는 닳고닳은 말로 "고맙습니다." 밖에 할 수 없는 절망감이라니요.
고맙습니다 라는 말의 답변은 "뭘 그 까짓 걸 가지고......."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곱고 따스한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져 감히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갚겠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그 것의 열 배 아니 백 배쯤은 누군가를 위해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날, 아주 난감했을 때 불쑥 손 내밀어 준 당신처럼 지금 내 곁에 누군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난처해 있다면 아낌없이 "자, 여깃어요, 이걸로 써요" 하면서 말입니다.
그날 당신의 소박한 미소는 잠자리까지 따라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어려움을 나누어주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이렇게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나를 가르쳐 주신 천사여.
그날 받은 천 원 권 지폐 한 장의 따스함, 내 맘속에 오래오래 다른 이에게 나눌 수 있게 가르쳐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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