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

때론 부록附錄도 눈부시다

김인자
2002.11.03 10:58 5,26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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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부록附錄도 눈부시다


젊은 한 때,
인생이 부록附錄같은 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얼마나 다지고 또 다졌던가?
오래 아끼고 익힐 명작은 못되더라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록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수 없이 나는 나에게 말해왔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나는 내 인생에 부록도 필요하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된 것인가? 언제부턴가 연례행사처럼 부록에 눈독들여 마련하는 게 있는데 가계부가 그것이다.
일년 열 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가계부를 책상에 놓고 사는데 가계부에는 단지 그날의 지출 몇 푼이 숫자로 메모되어있는 것에서 그치는 법이 없고 모든 일상사가 다 그곳에 모여 있는데 집안의 일이며 계획이며 심지어 시작詩作메모까지 그때그때 단상이나 감정의 파장 혹은 굴곡까지도 감당해야하는 것이 가계부이다 보니 나는 결혼 이후로 한번도 가계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소중하다.
건망증이 도를 지나친 탓이기도 하지만 모든 걸 기록에 의존하는 습성도 한 몫 했으리라.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 나는 월간여성지의 부록이 가계부가 아니라 가계부를 사면 월간지를 덤으로 주는 것이라 믿는 고정된 버릇이 생겼다.
내게 있어 가계부는 일년 내내 아끼고 쓰는 소중한 것이지만 월간지는 한 번 보면 폐기처분 되는 소모품이 아니던가.생각에 따라 인생도 부록이 곧 본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소중한지는 사람에 따라 값어치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오늘 아침 어제의 지출을 메모하다가 문득 이 글을 남긴다.
때론 부록도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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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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